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아리시마 타케오 (문단 편집) == 여담 == * 이 정사에 영향을 받아, 3년 뒤, [[오사카]]에서 <사의 찬미>를 녹음하고 돌아오는 길에 서른 살의 [[윤심덕]]과 [[김우진(작가)|김우진]]이 [[현해탄]]에 함께 몸을 던진다. 아리시마와 하타노의 동반자살은 이처럼 두 나라를 뒤흔든 큰 사건이었다. * 아리시마 다케오가 조선에 영향을 미친 것은 단지 이 자살 사건뿐만은 아니었다. 그에게 큰 영향을 받은 두 한국 작가가 있는데, 한국 근대문학의 기둥이던 [[김동인]]과 [[염상섭]]으로, 이들이 일본에서 유학했던 1910~20년대는 아리시마 다케오가 가장 활발히 창작 활동을 했던 시기다. [[염상섭]]의 초기작에는 아리시마의 <다시 태어나는 고통> <돌에 짓눌린 잡초>의 흔적이 엿보이며, [[김동인]]의 <붉은 산>은 홋카이도 농민들의 혹독한 삶을 그린 <카인의 후예>의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 [[아마카스 사건]]의 피해자였던 오스기 사카에와 은근히 교류가 있었다. [[베를린]]에서 열린 국제 [[아나키스트]] 모임에 참가하려던 오스기에게 몰래 여행경비를 전달하기도 했었는데 개방적인 성격이던 아리시마는 '나는 오스기 군과 사상적으로 다른 입장이지만 저렇게 개방적이고 대단한 인물을 일본에만 두는 것은 아쉽다고 생각한다.'라는 발언을 기자에게 남겼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